190428 : 기생충

 한때 너는 이런 말을 했다. 내 안에 기생충이 산다고. 말단부터 갉아먹다가, 결국에는 내 심장까지 올 거라고. 사실 그땐 무슨 얘긴지 긴가민가했는데, 기생충이 진짜 있기는 한가보다.

그래, 이상하지. 네가 그렇게 쉽게 죽어버릴 사람이 아닌데. 악으로 독으로라도 버틸 사람이었는데. 게다가 너는 겁쟁이라서, 눈 똑바로 뜨고 죽을 위인도 아니었다. 그때 내게 기생충 이야기를 하던 너의 속내를 이제 알 것 같았다. 나 혼자는 이 벌레를 죽일 수 없을 것 같으니, 내가 다 갉아 먹히기 전에 네가 좀 도와달라고. 죽여달라고. 살려달라고.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을까.

손끝이 투명하다. 네가 죽은 그 날, 너를 끌어안고 울던 그 순간에, 너를 죽인 그 기생충이 내게 옮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이럴 리 없다. 이토록 절실하고 생생하게 너를 이해할 수 있을 리 없다. 공기가 묵직했다. 비가 오리라. 비 오는 날에는 기생충이 자꾸 자란다. 아마 오늘은 팔꿈치 까지 먹힐까? 아니면 어깨까지 오를까? 아니면 발목으로 자리를 옮기려나? 사실 그러한 것들은 내게 별로 중요치 않은데도, 자꾸 신경이 쓰였다. 언제쯤 심장을 갉아 먹힐지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둥둥 울렸다. 너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에 대한, 평생 가능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한 일에 대한 기대였다.

베란다에 놓아둔 작은 의자로 가 앉았다. 네가 앉던 자리였지만, 이제 내가 앉아있는 것도 어색하지 않았다. 가끔씩 거울 속에 네가 보이는 날도 있었다. 바깥으로는 산맥의 허리를 자르고, 그 위에 건물을 지어내는 일이 한창이었다. 급히 장비를 철수하는지, 깡깡거리는 쇳소리가 동네를 울렸다. 저 불빛이 밝아서 며칠 밤을 새었지. 공사장을 밝히는 수많은 조명을, 빗물에 번지는 빛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창문은 활짝 열린 채였다. 부슬거리는 빗물이 들이닥치고, 바지 끝단이 서서히 젖는다.

이런 날에는 빗소리가 발걸음 소리 같아서 그냥 살 수가 없다. 여우비처럼 갑작스레 와도 좋고, 이슬비처럼 서서히 걸어와도 좋고, 장대비처럼 달려와도 좋으니 제발 와요. 이제 좀 와요. 복잡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신이 와서 도와줘요. 죽여줘요. 살려줘요. 구원이라 이름 붙이지도 못한 채 그저 기다렸다. 여우비로 오기를. 이슬비로 오기를, 장대비로 오기를. 이왕이면 장마로 와줬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그러면 내가 기꺼이 맞을 텐데. 방울방울 아까워 다 삼킬 텐데.

 

2019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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