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생각들

1. 나는 언덕을 오르거나 아무도 없는 숲길을 걸으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한다. 이젠 습관적으로 일주일에 2번은 꼭 언덕에 오르곤 하는데, 그 시간이 나의 나머지 삶을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된다. 오늘 분의 생각을 마치고 나면 지나간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삶을 관통하는 어떤 그리움에 대해 생각한다. (특정 인물이나 장소가 아니라 어떤 시절?)
반포 한강공원이나 성수동의 어느 골목, 약수역 버스 정류장 따위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마음들이 분명 있다. 내가 정말로 그리운 것들 또는 어떤 시절, 세상은 다 잊어버린 시간들에 대해 마음껏 생각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 때가 흔치 않다는 뜻이다. 그러고 나면 야트막한 언덕 꼭대기에서 동네를 내려다볼 수 있게 된다. 개운한 기분이다. 계절을 가릴 것 없이 꼭대기에는 바람이 불게 되어있다.

 
2. 사람의 눈빛을 보는 일이 좋다. 어떤 누구의 눈이든 그 눈동자가 나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주 믿을 수 없어진다. 나의 존재를 확인받는 기분이 든다.
초등학교 때는 매년 학예회 무대에 올라야 했는데,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강당 뒤쪽에 걸린 시계만 뚫어져라 보며 공연을 했었다. 그 습관을 버리지 못한 나는 지금도 강당 뒤의 농구 골대를 본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관객석을 보거나 농구 골대의 구조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말이 꼬여버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 서면 무언가를 또렷이 응시해야 한다.
시선은 영혼과 가장 가까운 창구라서 언제든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눈빛에서는 맑음이 느껴진다. 죽어도 미워할 수 없는 눈동자가 있다. 그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어떻게 바라보고 싶은지,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투명하게 보이는 것만 같다. (나만의 착각이겠지만) 그런 눈동자를 가진 사람만이 무해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눈빛이 흐려져 있을 때, 나는 집에 가는 내내 그를 위해 기도한다. 아주 어리석은 선택을 하거나, 열등감에 가득 차 타인과 자신을 자꾸 같은 선상에 놓고 견주려는 사람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다. 물론 나도 내 신앙이 의심이 가득하며 흐릿하고 순종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기에 기도하는 수밖에. 나의 어리석음이 뒤통수를 때리는 많은 순간들에도 마찬가지다.
 
3. 나는 답지 않게 사랑지상주의다. 부와 명예 따위는 공중에 붕 떠있다. 사랑만이 내가 발을 딛고 선 이 땅에서 나 자신의 존재를 따뜻하게 느낄 수 있게 한다. 살기 위해 사랑을 포기하는 날이 올까봐 가끔(아니 매일)두려워진다. 사랑 없는 삶만큼 퍽퍽하고 무의미한 것이 없을 텐데. 그것이 일종의 사는 방법이 된다는 게 소름 돋게 두렵고 끔찍하다.
그래서 매년 5월에는 사랑노래만 듣는다. (가사가 들리는 한국 노래들) 이렇게 좋은 계절에 사랑을 논하지 않는 것은 인간으로 태어나 못할 짓인 것 같다. ‘언제나 무엇이든 마음껏사랑할 수 있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은 축복이다. 우리가 돈을 버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기 위함이고, 사색하고 사유하는 것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더 잘 사랑하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나는 사랑이 세상을 바꿀 열쇠가 될 것이라 믿는다. 사랑만이 사람을 변화하게 하고, 사람이 변해야 세상이 바뀌기 때문이다. 성애적인 사랑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랑의 종류가 있는지 잘 모르지만, 부정할 수 없는 것은 타인을 향한 모든 사랑들이 세상을 이끌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지 않을까. 난 예수님이 아니기에 당연한 일이겠으나... 미운 것들은 너무도 많고 바로잡아야 할 것도 넘치는 이 세계에서 그 흠집들을 모두 사랑해야 한다니.
매일 더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사회에 대한 책임이다.
 
4-1. 여름이 되면 허벅지에 정맥이 비친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4-2. 홍조도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올해는 또 얼마나 빨개질까 기대가 된다. 한의원에서 땀이 별로 없는 체질이라 열이 갇힌다고 했다. 난 한의원이 싫다.
4-3. 머리도 곱실거리기 시작한다. 습도가 높아지는 탓이다. 긴 머리인데다 자꾸 부풀어 오르니까 열이 갇혀서 얼굴이 빨개진다. 무엇보다... 이마께의 잔머리와 귀 쪽의 잔머리가 양쪽으로 말려올라가서 네 개의 더듬이가 생긴다. 컨셉인 척 해야겠다.
4-4.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하루에 3개씩 먹는다. 사실 겨울에도 먹지만 덥다는 핑계로 여러 개 먹을 수 있다니. 기쁘다. 그래도 더워서 살이 빠진다. (살 쪄도 먹었을 것)
4-5. 여름엔 앞머리를 길러서 옆으로 넘기고 화장을 거의 안 하는데, 이제 슬슬 앞머리를 길러봐야겠다
4-6. 난 하복을 입으면 어깨가 굽은 게 너무 티가 나서 짜증난다. 중학교 내내 키보드를 너무 많이 두드린 탓인가... 남들은 공부하느라 목이 휜다는데 나는 이런 자의식과잉 글 쓰느라 휘었다.
 
5. 다들 각자의 삶에서 전투 중일 테니 모두에게 친절 하라는 말이 생각난다. 온탕에서 열탕 본다고 냉탕 되는 건 아니니까... 그나저나 나는 요즘 휴전중인데 개학과 동시에 바로 그냥 라이언 일병 구하기 찍는 거 맞지
 
6.어쩌다 이어폰을 반대로 꼈고... 나는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왼쪽 귀에서 들리는 소리가 훨씬 다채로웠다는 사실을! 왼쪽 귀가 더 나빠서 그런 걸까 빨리 헤드셋을 사야겠다.
 
8. Ctrl+C를 3번씩 탁탁탁 누르는 습관이 생겼다. 

9. 이것 저것 거창하게 늘어놔도 어차피 인생은 귀찮음과의 투쟁이 아닐까... 나는 책상에 책을 올려놓고 그걸 펼치기까지가 너무 어려운 사람이다. 펴면 잘만 읽을 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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